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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충청도 홍성땅. 북으로는 삼불산(三佛山), 남으로는 청계천 맑은 물을 끼고있는 마을ㅡ 갈산(葛山). 월선정(月仙亭)의 련못에 살얼음지던 동지달 스므나흔날, 태고연한 이 마을에서 <<응아!>> 고고성을 터뜨리면서 김좌진은 인간세상에 태여났다.
그때 김좌진의 아버지 형구씨는 나이 26살이였고 어머니 리씨는 27살이였으며 좌진의 손우로는 9살나는 누님 옥출(玉出)이와 5살된 형 경진(敬鎭)이가 있었다. 좌진의 아버지는 그때 고종조의 참봉으로 지내면서 80여칸의 널다란 기와집에 남녀종만도 50여명을 부리면서 살고있었으니 갈산뿐아니라 온 홍성고을안에서도 뜨르르한 세력가였다.
그의 가문을 보면 실로 오랜 량반가문이요 명문거족이였다.
저 멀리로는 조선왕조 인조(仁祖) 11년(1637년) 12월, 청나라가 군신(君臣)의 관계를 맺을것을 요구함에 척화론(斥和論)의 주장에 따라 이를 배격하자 청태종(淸太宗)이 직접 20만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함으로 해서 일어났던 <<병자호란>>때에 태자를 모시고 강화도(江華島)로 피난하였다가 그 섬이 적군에게 점령되니 담뱃불로 화약고에 불을 달아 어린 손자와 함께 폭사한 력사인물 선원 김상용(仙源金尙容)이 좌진의 11대조요, 가까이로는 5년전이던 고종 21년(1884년) 음력 10월에 개화당(開化黨)사람 박영효(朴泳孝), 홍영식(洪英植) 등과 손잡고 사대당(事大黨)인 민씨일파를 몰아내고 혁신정부를 세우고저 <<갑신정변>>을 주모했던 김옥균(金玉均)이 바로 좌진의 십일촌숙부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즉 좌진이야말로 애국자의 피를 이어받고 태여난 그 김씨가문의 후예라 하겠다.
갓난애가 어찌나 컷던지 보는사람마다 놀래면서 이 집에서 장수가 났다고 축복했다. 그바람에 부모들은 퍽 기뻐했다.
<<애가 참으로 장수돼줫으면.>>
비록 막연하긴 했지만도 그네들의 기대는 진실로 이러했다, 너무나도 약세하여 이제는 남의 침탈의 대상이 되어버린 나라를 구원할만한 영웅이 자기 가문에서 꼭 나와줫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
세월이야 어떻든 아이는 무사히 잘 자랐다. 좌진은 유년시절부터 남다른 천성을 갖고 있었다. 그의 집에는 4대째 내려오는 종이 있었는데 이름은 춘봉이라 불렀다. 춘봉이는 손재간있어 통이며 칼같은것을 잘 고쳤거니와 멍석도 잘 틀었다. 말하자면 이 집에서는 둘도없는 기술자였던 것이다. 그러한 그의 어머니를 김씨네는 종할미라했는데 맘씨 좋고 어리무던한 그녀가 좌진이를 끔찍이 귀여워하면서 거의 업어자래우다싶이 했다.
한데 유년의 좌진이는 곱게 업혀있을 념은 안하고 가끔 엉덩뜀질을 하면서 종할미더러 망아지 우는 소리를 내라고 닦달을 놓군 했다. 그러면 종할미는 과연 망아지우는 소리를 내거나 아니면 뛰는 양 흉내라도 내군 했다.
좌진이가 하도그래 그의 아버지는 이 둘째아들이 말을 번지기 시작할 때 벌써 크거들랑 좋은 말을 사주마고 약속한바 있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되였다. 이러구러 유년 김좌진이는 무병하게 잘 자라건만 아버지 김참봉은 시름시름 앓기시작한 것이 병이 고황에 들어 셋째아들 동진(東鎭)이까지 보고나서 자리에 누운후로는 다시 잃어나지를 못했던거다. 그때 좌진이는 4살이였다.
어느날 아버지는 그를 자기 머리맡에 불러 앉혀놓고 물었다.
<<좌진아, 넌 커서 뭐로 되련?>>
이것이 본래 어린애였던 그한테는 어려운 질문이였다.
그런데 좌진이는 아버지의 충혈된 눈을 말끄러미 보다가 대답하는것이였다.
<<난 크거들랑 판서될래.>>
너무도 뜻밖인지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며 눈이 둥그래졌다. 이제 4살먹은 애의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올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그러나 좌진이가 아무렇게나 허튼소리를 줴친것 같지 않았다. 어느날인가 아버지가 어머니보고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더러운 민씨일족이 정승, 판서질을 도맡아하니 기막힐 일이라며 욕하는 소리를 그가 들은것이다. 그래서 정승, 판서가 어떤것인지는 몰라도 그걸 자기가 빼앗아 가지리라 맘을 먹은거고 그렇게 말하면 앓고계시는 아버지를 위로할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허지만 그의 아버지는 되려 낯색을 흐리우고 꼭마치 다 자라 의식이 튼 아이에게 하듯이 간곡히 부탁했다.
<<얘야, 안된다. 너는 판서가 되지 말고 장수되거라. 흉악한 역적과 매국노를 무찌르는 불호랑이같은 장수되거라.>>
<<장수?>>
좌진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아버지에게 반문했다.
<<불호랑이같은 장수요?>>
<<그렇다. 불호랑이같은 무서운 장수가 되란말이다.>>
<<응.>>
좌진이는 의연히 빙그레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이로부터 이틀후에 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은채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좌진에게 동생 동진이가 생겨 백날만에.
아버지는 돌아갔다. 그까짓 참봉벼슬쯤이 탐탁할리 없지만 임금이 하사한 은총이요 내 나라의 벼슬이니 굳이 사양하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살아오시던 아버지, 가끔 서울갔다가는 눈꼴사나운 민씨의 세도와 그자들의 타락함을 보고서는 이를 갈며 돌아오시군 하셨던 아버지, 버젓한 문벌에 떳떳한 혈통을 가졌건만 자신에게는 힘도 능력도 없어 속수무책이 되었던 아버지, 벼락출세하여 판을 치면서 선조가 물려준 내 나라를 말아먹는 망나니같은 녀석들을 어쩌지 못하는 답답함과 억울함에 지쳐서 나중에는 병까지 얻었던 아버지는 망명간 옥균형을 그리다가 풀지 못한 한을 한가슴에 안은채 저 세상으로 가고말았다.
눈물겨울 지경으로 막연한 희망을 제 자식에게나마 걸어놓고 조용히 저승으로 가버렸다.
속담에 큰집은 기울어져도 삼년 간다 했다. 그래선지 50여명의 가노가 모여있는 좌진이네 집은 의연히 북적거렸고 마을안의 번성한 일가친척들도 변함이 없었다.
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면현상이였지 주인을 잃은 집안은 허전하고 쓸쓸해짐을 어쩔수가 없었다.
누구보다도 지겹게된것은 이제 30살인 미망인 리씨였다. 그녀도 량반집 딸이라 부모들께서 인생수양을 쌓았어도 너무나 일찍이 받아들인 불행이라 기구한 제 신세를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북받치는 서러움을 누를수 없어 거의 매일이다싶히 혼자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나어린 좌진이는 그러는 어머니가 민망스러웠던지 어머니가 젖먹이 동생을 안고 침묵에 잡겨 한숨짓거나 소리없이 눈물떨굴 때면 <<엄마 또 울우?>>하고 묻거나 그저 기분없이 옆에서 우두커니 지켜보다가는 발길로 문을 걷어차고는 밖으로 뛰여나가군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지꿎게 캐물었다.
<<엄만 아버지 안와서 울우? 아버진 왜 아직두 안와?>>
<<애두.... 돌아가신이가 어떻게 오느냐?>>
<<왜 못와? 말타고 오면 안되나?>>
<<말타면 오시나? 안와. 너의 아버진 이젠 안와.>>
<<왜 안오나?>>
<<다시는 못올 저승 갔으니까 안오는거지.>>
어머니는 이러곤 다시 흐르는 눈물을 훔치였다.
어린 좌진이로서는 종시 모를 일이라 눈만 더 크게 떠가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저승이라는것이 어디냐, 서울이 아니냐고. 서울도 아니고 이 땅도 아니면 그래 룡이 올라가려다가 못 올라가고 떨어졌다는 저 하늘이냐고. 자식이 너무나도 천진함에 어머니는 더 응대를 못하고 웃음만 지었다. 그랬더니 좌진이도 따라웃고는 애기의 이름을 복동이라지으면 어떨가, 아버지 안오셔도 엄마 있으니 우리 애긴 복동이로 되잖느냐고 얼뚱한 말을 끄집어냈다. 그러면서 자기도 이름을 판서라 고치자했는데 아버지가 그러지 말라고 했으니 그만두련다 했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들이였다. 귀여운 이 아들을 어찌 불쌍하게 키우랴. 어머니 리씨녀인은 맘먹고 잘키우리라 했다. 저것이 사람이 되는것을 보기까지는 천지가 뒤집혀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도사려먹었다.
그런데 웬 일일가. 이날 놀러나간 좌진이가 날이 저물었지만 들어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아이가 잃어졌다고 온 집안이 찾으러 나섰더니 어린 좌진이는 월선지(月仙池)련못가 바위돌우에 홀로 오도카니 앉아있는것이였다. 달밝은 밤 어린아이는 고요속에서 하늘을 쳐다보다가는 고개를 꺾고 련못을 들여다보고 련못을 들여다보다가는 다시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보군 했다.
그러는 그를 삼월이라는 녀종이 둘쳐업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조카가 잃어졌다는 소리에 놀래여 달려왔던 오촌숙부 창규는 그를 보자마자 너 이놈 어디가서 집안어른들을 걱정케 만드느뇨 하고 노해서 꾸짖었다.
했건만도 어린 좌진이는 입을 꼭 다문채 아무 대꾸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그의 팔을 끌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민망스러워 눈물을 흘리며 물어보았다.
<<이 에민 속타죽겠다. 너 대체 어째 그러니? 거기룬 왜 갔더랬니? >>
<<아버지오시는가 보러.... >>
아이는 마침내 입을 열곤 고개를 떨어뜨렸다.
<<좌진아!....>>
젊은 과부 리씨는 그만 아이를 끌어안고 오렬을 터뜨리고말았다.
좌진이는 자라면서 점점 장난이 심해져 날만 밝으면 놀음이였다.
마을의 애들을 휘몰고다니면서 온 동네가 들썽하게 놀아댔다. 군대놀음, 씨름하기, 싸움질.... 돌팔매질해서 나무에 앉은 새를 잡았고, 그러다가 남의 집 장독을 깨기도하고.
제집의 종아이들과 말타기놀음도놀았고 방금해입은 하얀 옷을 흙투성이되게 하거나 찢을때도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종아리를 맞아가며 꾸중을 들었다. 그럴 때면 되려 어머니보고 때리면 누가 아파할줄 아는가 엄마 손바닥만아프지 하고 말했다. 자기는 아버지의 분부대로 꼭 장수가되리라고 늘 외우군하는 좌진이였다.
월선지. 이 고요한 련못이 생겨서 허구한 세월. 흰옷입은 이곳 갈산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비껴담은건 얼마며 새겨담은 추억은 또한 그 얼마랴. 헌데 룡이 하늘로 오르다 못오르고 떨어졌다는 전설을 갖고있으니 섭섭한 일이였다.
<<룡이 왜 하늘로 올라 못가고 떨어졌을가? 난 장수돼서 올라가볼테야.>>
좌진이는 가끔 이러군 해서 어른들의 찬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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